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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하루│

서울대 수시 면접 후기랍니다

by saidacola 2019.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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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로 쓰는 설경제 수시 일반전형 면접 후기>


내가 진짜 면접 한 내용 별로 쓰고 싶지는 않은데, 나의 소중한 벗이 계속 나더러 면접 복기한 것좀 써 놓으라고, 놔두면 여기저기 써먹을 데가 굉장히 많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혹하여서 대강 적어보려 한다. 뭐 이 글은 어차피 현역 때 자랑스럽게 지균으로 자유전공학부 면접에 갔다가 루소의 사상을 요약해서 설명해 보라는 교수님의 질문에 로크의 사상을 답하여 갑분싸;;해버린 탓에 연대 경제에 가게 된 한 마리의 축생이 쓴 대강의 똥글이니, 심심하면 읽어보던가 하시고, 혹 누군가 앞으로 준비할 대입 면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아니할까 싶어 쓰지만, 사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도 잘 알고 있고, 암튼 읽을 사람은 읽고 말 사람은 말고, 알아서들 하시길. 자유롭게 편집하고, 오르비든 수만휘든 지 페북이든 여기저기에 공유해도 좋으나 어떤 학원이나 과외 선생 개인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순간 (법적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피해 사실을 인지한 순간’) 이후부터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저작권법의 쓴맛을 장범준 벚꽃엔딩이 차트에 오를 때마다 보여줄테니 그렇게 아시길.

나 같은 경우는 정시파이터가 될 성격은 결코 아니고, 2학기 때부터 준비 해봤자 잘 가면 서강대 상경계열일 것이라는 본인의 정시 실력을 너무나도 잘 인지할 정도로 메타인지가 뛰어나기 때문에 걍 학교 다니면서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준비를 했었고 (그런데 떨어졌으면 되게 서운할 뻔했다. 그리고 그렇다고 대강 준비했던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혹시 누구한테 말했다가 떨어지면 사랑하는 나의 대학 동기들에게 평생 놀림감이 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몰래 슬며시 서류를 넣은 케이스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연대 경제학과에서 가르치는 수준이 샤대 경제에 비해 그렇게 크게 떨어지는 것 같지도 않고, (물론 교수진은 서울대가 더 뛰어나겠지만) 기껏해봐야 서울대가 더 좋은 점은 ‘서울대라는 점’과 등록금 싼 것 뿐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겐 잃을 것이라고는 원서접수비와 학점밖엔 없는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학기는 이거 준비 안했어도 학점이 망했을 것 같다. 거시경제원론 무엇... 어쩌면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어서 면접 당시에 크게 떨리지 않았고 오히려 대기실에서 옆에서 긴장하면서 역대 면접 기출문제들을 열심히 풀고 있는 친구들에게서 나의 현역 때의 모습이 살짝 보이는 것 같아 추억 돋는(?) 경험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현역 때 면접 준비를 그다지 열심히 하지는 않았는데 왜 그걸 보면서 추억이 돋았나 알 길이 없기는 하다.(?)

아무튼 면접 당일의 날씨는... 눈이 왔던 것 같고, 정확히 말하면 내가 맨 뒤에서 두 번째 사람이었는데 면접 하러 들어갈 때는 적당히 따뜻했는데, 하고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패딩 입고 가길 잘했다. 아무튼 들어갈 때 경제학과 면접 본다고 하니까 “경제~ 경제~” 이러면서 형인지 동갑인지 모를 이들이 나에게 힘내라고 노래를 불러줬고, 그게 되게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냥 뭐랄까, 그것 자체로 힘이 된다기보다는 데자뷰같은 기분이 들어서랄까...

경제학과라고 하니까 아저씨가 올라가라고 해서 올라갔고, 대기실 들어가서 화장실 한 번 가서 나의 잘생긴 얼굴을 감상하고 소변도 보고, 그리고 앉아있다가 갑자기 ‘이제부턴 손들고 화장실 가야 합니다’ 이러면서 관리자분이 말씀하시길래 ‘오 이제 진짜 시작하나보네’ 속으로 이랬음. 그냥 잘까도 생각해봤는데 전날에 너무 잠을 잘 자가지고 잠은 하나도 안왔고, 그리고 다들 긴장해 있는데 나 혼자서 자면 옆사람한테 지나친 기만질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나름의 배려심과 예의(?)가 발동해 그동안 조금씩 살펴봤었던 기출문제들을 꺼내서 나름대로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음.

근데 기다리는 시간이 넘나 오래걸려서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화장실도 한 번 갔다가 물도 마시고, 내 순서는 언제 오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되게 지루하게 시간을 때웠던 것 같다.

거기 관리하시는 분들이 아마 제일 지루하셨을 지도 모르는데, 왜냐면 그 분들은 계속 우리를 앉아서 지루해하는 우리의 모습을 구경하고만 있지,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 아마 수능 면접관급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분들로 말할 것 같으면 되게 친절한 듯 하면서도 우리의 눈치를 은근히 보는 것 같으면서도 나름 불친절한 면도 있었던, 뭔가 어색해보였던 분들이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어찌 됐든 설상가상으로 핸드폰도 빼앗긴 나는 내가 사랑하는 페북 관종짓도 못하고 그냥 앉아서 손가락만 빨고 있다가 어느덧 나의 차례 (내 뒤에 딱 한 명 앉아있었다. 내가 오후 조 맨 뒤에서 두 번째 학생이었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전체 학생 중에서 내가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였다.)가 되어서 내 패딩과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감독관?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거기 관리하시는 분 중 한 명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 떨린다는 마음보다는 ‘아 이제 곧 끝나겠네, 에휴,’ 하는 마음이 더 컸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나는 귀찮았었음. 작년 고대 면접때도 비슷했는데, 그때는 내가 맨 마지막 학생이었음. 거기 관리하던 형이 나한테 ‘고생하셨어요’ 라고 얘기할 정도로 난 대기실에서 오래 기다렸었는데....추억팔이.. 아무튼 올라가니까 되게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험이 진행되고 있었음. 기다란 복도가 있었고, 거기 복도의 양쪽 벽 옆에 학생들이 앉아서 문제를 풀고 있었음. 나는 연대처럼 문제 푸는 방 따로 있고, 대기하는 책상 따로 있고, 면접 보는 방 따로 있을 줄 알았는데 서울대는 그 춥디 추운 날 학생들을 복도 벽에 책상 세 개를 붙여놓고선 거기 앉으라고 하고 문제를 풀게 했음. 그런데 생각보다 안 추워서 당황했고, 그렇다고 패딩을 안 입기에는 조금 추워서 또 당황했었음. 온도변화에 민감하신 분들은 안에 내의를 껴 입으시면 좋을 것 같음. 나는 그날 면접장에 입고 들어갈 코트 위에 패딩을 덮어 입고 갔었는데, 작은 책상에 앉아서 패딩 입고 연필 쓰기는 불편하니까 ‘그냥 잠깐 춥지 뭐’, 하는 심정으로 벗어버리고 문제를 풀었음.

사실 나는 사회과학 기출문제들만 보고 갔었는데, 수학을 이제 와서 준비해봤자 별 의미도 없을 것 같았고, 내가 수학 못하는 건 온 우주가 알고 있으므로 그냥 떨어지면 수학 탓이려니...하는 생각으로 준비를 안했었음. 그 대기실에서 옆에 보니까 수학 모의고사 30번 문제들(?) 같은 거 모아놓고 열심히 머리 굴리는 연습 하는 학생들이 많기는 했음. 뭐 기출문제 몇 번 보긴 했었는데, 비슷한 수준의 사고력을 요하는 것 같기는 하더라.

내가 당황했던 건 수학 푸는 시간을 또 더 줄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문제지는 수학 한 장, 사회과학 한 장 해서 총 두 장을 줘 놓고 30분만 주더라는 사실! 여기서 내가 얼마나 면접 준비를 대강 했는지 알 수 있다. 시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조차 몰랐던 것...

그래도 뭐 나만 30분 쓰는 것도 아니고, 어쩐지 사회과학 지문 하나만 준비하기엔 3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생각도 이전에 했었으므로 ‘남는 시간에 수학 풀지 뭐’ 하는 심정으로 사회과학 지문을 먼저 봤음.

오전 조랑 문제가 어떻게 다른지는 확인을 안해봤는데, 내가 푼 문제는 사용하는 물건들 때문에 니체가 글 쓰는 방식이 바뀌고, 택시기사들이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는 내용이었음. 특히 (다) 지문은 영어였는데, 내가 자주 즐겨보는 웹툰인 ‘가우스 전자’에서 예전에 한번 나왔던 소재인 ‘F 자형 읽기’에 관한 글이었음. 대략 내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들이 디지털기기에서 글을 읽을 때 그 사람들 눈을 아이트래킹을 해보니 각 단락의 첫 두 문장 정도만 대강 읽으면서 핵심 내용만 파악하고, 세부적인 내용들은 그냥 건너뛰면서 읽더라는, 그런 내용의 글이었음. 뭐 나 같은 경우도 뉴스같은 거 볼 때 되게 대충대충 읽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디지털기기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사실 내 성격이 문제다. 나름 사회과학 주제 치고는 심플하다는 생각을 했었음. 뭐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고, 문제가 요구하는 바도 명확했음. 그러니까 첫 번째는 이 사례들이 의미하는 것, 인간이 본인이 사용하는 물건들에 의해 지배 내지는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하라는 거였고, 두 번째는 F자형 읽기의 현상을 설명하면서 그럼 이런 현상으로 인해 어떤 영향이 생길 것이며, 또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등등을 설명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음.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의 경우에는 (가)의 사례에 나온 니체가 타자기 쓴 이후로 문체가 바뀐 것을 보면서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로 인해 ‘사고’의 방식이 변했다”라고 생각했고, (나) 사례에서 택시기사들이 지도를 보기 시작한 다음부터 공간을 추상적으로 인지하는 뇌 영역이 확장된 것으로 봐서 “인간의 ‘신체’에까지 영향을 준다”라고 봤고, 결론적으로 “인간은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로 인해 사고방식과 신체에 변화가 발생한다.” 라고 생각했음. 근데 약간 (나) 사례가 과연 도구로 인해 신체 변화가 발생한 것인지, 아니 그러니까 그쪽 뇌가 더 발달하게 된 것은 맞는데, 사실 그건 사람들이 지도를 보기 시작하니까 그쪽 뇌를 더 많이 써서 자연스레 뇌 구조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러니 도구의 사용 자체가 신체 변화의 직접적 원인이 되지는 않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왜냐하면 원인을 계속 쫓아 올라가다보면 결국 책임은 이 인간을 만들어 낸 신에게 있으므로), 어찌 됐든 원인은 원인이니까, ‘대략적으로만 언급하는 식으로’ 설명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음. 왜냐면 이런 문제에 면접관이 만약에 파고들어서 계속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사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허허..’ 하는 정치인스러운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 또 사례도 몇 개 생각했는데, 대략 스마트폰을 사람들이 많이 쓰니까 기억과 관련된 능력이 퇴화되는 사례? 그리고 처음 계산기가 나왔을 때 학자들이 그것의 사용으로 인해 자신의 수학적 사고력이 축소될 것을 우려했던 학자들의 사례?를 생각했고, 그걸 말하려 했었음. 그리고 F자형으로 사람들이 글을 읽는 현상과 관련해서는 ‘정보의 전달’과 ‘정보의 수용자’ 입장에서 생기는 커뮤니케이션 양상의 변화로 설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각자가 이러한 ‘F자형 정보전달’과 관련해서 취해야 할 노력을 정리했었음. 그러니까 첫 파트에서는 도구가 인간에게 주는 영향을 사고와 신체의 두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했고, 두 번째 파트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양상과 관련하여 정보 전달자와 수용자의 입장으로 나누어서 구조화시켜서 설명했던 것. 그리고 각각의 사항들에 대한 사례들을 붙여주고. 암튼 그러니까 계약서를 작성할 때 독소조항은 반드시 단락의 첫 부분이 아니라 각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 적어야 한다..

그 문제 푼 다음에는 도형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좌표평면 상에 점이 찍히는데, 특정 조건들을 만족시키면서 점을 찍었을 때 ‘점이 찍힐 수 있는 영역’을 둘러싼 도형의 특성을 파악하고, 또 그렇게 이해한 규칙성을 바탕으로 ‘특정한 점’을 나오게끔 하는 점들의 특성을 파악해 그 분포 양상을 설명하라는, 약간은 뜨악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러려니 할 만한 문제였음.

뭐 문제 난이도 자체는 전반적으로 평이했달까. 다만 나는 수학문제를 다 풀지 못했는데, 역시나 수학문제까지 함꼐 준비하는 연습은 해보질 않은 관계로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 컸음. 아마 시간분배를 좀 더 제대로 했더라면 다 풀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음. 그래도 사회과학 문제가 내 입장에선 나름 쉬워서 곽백수 작가 만세! 대강이라도 문제를 풀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뭐 이때 불편했던 것들은...약간 옆방에서 교수랑 학생이랑 대화하는 게 약간 웅성거리는? 그러니까 내용을 알아듣기는 어려운데 그렇다고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 정도의 수준으로 계속 들려오는게 되게 신경 쓰였고, 그 면접관 앞에서 긴장한 상태로 애들이 되게 밝고 또랑또랑하게 말하는 그 말투?가 들리니까 괜히 긴장되고, 무엇보다도 평소에 안 쓰는 스테들러 노랑 연필을 깎아 주면서 그걸로 풀라고 하니까, 아니 쓰면 쓸수록 연필심이 뭉툭해져서 겁나 불편했음. 샤프를 애용합시다.

아무튼 풀다 보니 감독 형이 시간 다 됐다고 하면서 들어가라고 하더라. 들어가라니 뭐 어쩌겠나, 내 짐들은 다 놔두고 문제지랑 내가 이것저것 정리한 종이랑 들고 딱 들어감.

방 안은 넘나 따뜻해서 좋았음. 그리고 그 교수님들 방에서 나는 특유의 그럴싸한 느낌이 들어서 뭔가 편안하면서도 불편했었음. 뭐랄까, 회사로 치면 부장님은 퇴근했는데 과장님은 남아서 일을 하는 바람에 눈치를 봐야 하는 저녁 8시의 말단사원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랬음. 그래도 작년에 세 번의 대입 면접을 치러봤던 터라 긴장하지 않고 굉장히 즐겁게? 면접에 임했었던 것 같다.

교수님은 한 분은 좀 젊어서 우리 아버지뻘에 조금 못 미쳐 보이셨고, 다른 한 분은 흰머리가 꽤 보이시는 분이었음. 질문은 젊으신 교수님께서 다 하셨고, 다른 한 분은 가끔 뭔가 못마땅할 때 ‘이거 해 보세요’, ‘저거 해 보세요’ 시키시는 분이었음.

다음은 들어갔을 때부터 대강 기억나는 대화 내용임.

 

(똑똑, 끼이이이익~~)

나 : 안녕하십니까. (인사 꾸벅)

왼쪽 교수님 : 어서오세요.

 

이게 끝임. 더 이상 생각이 안나네.

장난이고, 내가 자리에 앉으니까 (자리는 교수님 책상의 바로 건너편이어서 나름 가까웠음. 한 1미터에서 조금 더 많이 떨어진 정도의 거리였던 듯 싶음) 대뜸 “어, 저, 뭐부터 할까요?” 이렇게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나는 또 뭐가 그렇게 당당하다고 “제가 수학문제 다 못풀어서요...ㅎㅎ..., 사회과학 먼저 하면 안될까요?” 이랬고, 교수님은 약간 당황하신 듯, “그래도 시간 없으니까 수학 먼저 풀죠.” 이러셨음. 답정너

진짜 근데 하나도 안떨렸음.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는 일어섰고, 1번문제부터 설명하겠다고, 그렇게 하면서 보드마카 펜 들고 그림 그리는데, 진짜 내가 원을 그려야 되는데 무슨 으깨진 감자같이 원을 그리는거ㅋㅋㅋㅋ 나 스스로도 웃겨가지고 피식거리면서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림을 잘 못그려서요...’ 이러고..근데 교수님이 되게 친절하셔서 내가 그 칠판 앞에 있던 소파 때문에 그림을 크게 못 그린다고 생각하셨는지 소파도 뒤로 빼주시고 그러셨음. 아무튼 내가 진짜 그놈의 칠판 때문에 쌩 난리를 쳤음. 그림 지우다가 지우개도 떨어트리고, 펜도 떨어트리고, 대체 왜 합격시킨거지.. 뭐 원이 찌그러져 있더라도 위상수학에서는 동일하다고 여기니까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아인슈타인의 휘어진 공간이라고 믿고 설명을 계속해 나갔음. 첫 번째 문제는 간단한 무한급수 문제라서 그냥 대충 설명하고 넘어갔고, 두 번째 문제부터는 그림 그리는게 필요했는데, 내가 그림을 겁나 거지같이 그려서 교수님 한 분이 계속 각 도형의 선들이 겹쳐보였는지 다른 색깔 펜으로 써보라고 하셨음. 그래도 뭐 2번문제까지는 무난하게 설명한 듯? 왜냐면 내가 설명하면서 교수님들 눈치를 살짝씩 봤는데, 되게 열심히 끄덕이면서 경청해주시고 계셨기 때문. 특히 그 2번 문제에서 원을 그려야 했는데, 원의 반지름을 포함하는 삼각형 가지고 회전시킨다고 하니까 약간 크게 고개를 끄덕이셨음. 나는 맞았나보다 이러면서 신나서 또 설명하고ㅋㅋㅋ 뭐 애초에 다 못풀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시작했으니까 교수님들 입장에선 되게 면접의 흐름이 명확했을 듯 싶기는 함. 마지막 문제가 ‘규칙대로 점을 찍었을 때 원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질 수 있는 네 번째 점과 그 거리를 찾고, 그 점이 나오게끔 하는 두 번째 점의 영역을 구하라’였는데, 나는 점과 거리만 찾고 두 번째 점의 영역을 못구했었음. 암튼 그래서 내가 마지막 문제 바로 전에 설명 다 하고, “그래서 이렇게 풀면 될 것 같습니다~~” 따위의 말을 하자마자, 그 말 끝나기 무섭게 “음..그리고 마지막 문제는 다 못풀었고?” 이렇게 질문을 던지셨고, 나는 또 뭐가 그렇게 당당하다고 “네.” 이렇게 대답하고, “제가 약간 그 뭐죠, 여기 이 점은 이러이러해서 딱 하면 구할 수 있었는데(풀이는 나중에 기출 공개되면 알아서들 생각하삼), 시간이 없어가지고 두 번째 점들은 못구했습니다.” 이랬음. 뭐 어쩌겠나. 교수님들은 그냥 알았다고 말씀하시고 앉으라고 하셨음.

뭐 사회과학 문제야 아까 위에 써놨던 것처럼 설명했음. 기억에 남는 것은 설명하는 도중에 니체의 사례를 아까 위에 적었던 것처럼 “글이라는 것은 그 글을 쓰는 이의 사고를 반영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 사례는 도구가 인간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하니까 젊으신 교수님께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종이에다가 뭔가를 적으셨던 것. 아마 ‘도구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라고 대부분이 뻔한 얘기를 했는데, 내가 그걸 또 카테고리화해서 인간의 사고와 신체로 나누어서 각 사례를 설명했기 때문에 약간 그게 가산점이 되지 않았나 싶음. 근데 내가 생각하기에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딱히 특별한 내용은 아니어서, 그것 때문에 당락이 결정되었다고 말하기엔 약간 애매하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그리고 또 사례를 말해주면 면접관한테 이쁨받는다는 얘기를 기억해 내고 관련 사례는 위에 적었던 두 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중간에 교수님이 ‘질문 스킬’을 시전하려는 것을 실수로 캔슬해버리고 (그러니까 내가 말 하다가 사례 말하기 전에 잠깐 쉬었는데 내가 말 할 거 다 끝난 줄 착각하시고 교수님이 질문을 하려고 하셨던 것. 근데 입을 여는 순간 내가 사례 말하기 시작함.) 사례를 말해버려서 그냥 하나만 말씀드리고 교수님이 다른 이야기를 하실 수 있도록 기다렸음. 진짜 대화한다는 기분으로 면접을 봤기 때문에 편안하게 면접의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었던 것 같음. 그런데 나는 계속 말만 하고, 딱히 내가 하는 말들을 가로막고 질문을 하시거나 하지는 않으셨음. 이러한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하나는 너무 멍멍이 소리를 해서 들을 가치도 없다고 여기고 그날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이거나, 다른 하나는 논지 전개상 큰 오류가 보이지 않으니 굳이 말을 끊지 않는 거임. 그러니까 면접에서는 가끔 가다가 면접관들이 학생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질 때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가 ‘너 지금 잘못 가고 있으니까 빨리 제대로 답 고치지 않으면 니 인생 끝나는거임’ 하고 시그널링 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 사실 이러한 점에서 면접 끝나고 나올 때 내가 완전 이상한 대답을 한 것 같지는 않고, 교수님들도 고개를 잘 끄덕여주셨기 때문에 나름 합격에 대한 확신? 좋은 기운?을 느꼈었음. 내가 문제 다 설명 드리고 나니까 교수님들은 질문할 거리를 찾는 눈치였음. 조금 고민하시다가 마지막 문제 관련해서, 그러니까 ‘F 자형으로 글을 읽는 현상’과 관련된 본인의 사례를 말해줄 수 있냐고 하셔서, 나는 논문 읽을 때 무조건 프린트해서 본다고 하면서 오른손으로 마우스 휠 돌리는 손짓 하면서 “이, 이렇게 읽으면...좀 내용도 잘 이해 안 되고 그래서요...ㅎ” 이렇게 좀 바보같이 대답하니까 왼쪽 교수님은 갑자기 빵 터지시고박범계, 뭐 그랬다. 내가 웃겼나보다. 그 질문 끝나니까 갑자기 한 15초에서 30초 정도 대화가 끊겨버림. 젊은 교수님은 열심히 질문할 거리를 찾으시고, 난 그냥 그거 관찰하면서 기다리다가, 교수님이 질문할 거리를 찾으신 순간! 그리고 ‘그-’ 이러면서 말문을 여시는 순간! 똑똑똑- 하면서 1분 남았다고 밖에서 문을 두드림. (3분 남을 때 한 번 노크 하고, 1분 남을 때 밖에서 또 노크 함) 그래서 교수님은 포기하시고 ‘에, 아닙니다. 다 대답 잘 하셨고요. 네. 가시면 되겠습니다.’ 대강 이런 말을 듣고 일어남. 사실 밖에서 기다릴 때 나오면서 인사할 때 교수님들을 감동시킬만한 멘트를 하나 준비할까도 생각했었는데(또 그게 은근 먹힌다더라), 이렇다 할게 생각나지 않았어가지고, 그냥 90도로 인사하면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러고 걍 나옴. 뭐 “만수무강하십시오” 따위의 말들도 좀 아닌 것 같고... 걍 무난하게 끝내는게 낫겠다 싶었음. 그리고 애가 깔끔하게 실력대로 붙어야지, 마지막에 감정팔이 한다고 붙여줄 것 같지도 않았고...무엇보다 꼭 가고싶습니다! 이렇게 구걸하면서 설대에 굳이 가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고...

뭐 면접 보고 나오는데 그 느낌이 딱 연대랑 고대 면접 보고 나왔을 때 느낌이랑 똑같아서 붙었구나 싶었음. 작년에 연고대 둘다 학종으로 붙었어서, 그 느낌을 기억함. 이 아이는 약 3주 뒤 결과 확인하면서 인생 최대 속도의 심박수를 경험합니다. 뭐 붙어도 그만, 안 붙어도 그만, 연세대에서 열심히 살지 뭐, 하는 마음이었는데 사실 2학기 학점이 되게 걱정스러운 부분들이 많아서 서울대 가서 리셋하고 싶다는 마음도 되게 컸음. 아니 그리고 내 여자친구는 서울대가 늙은 애들(?!) 싫어한다고, 재수생들 싫어한다고 겁 준 것도 있어가지고, 사실 불안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음. 뭐 합격했으니 다행이지.

결론을 내리자면 떨지 않고 교수님하고 대화하는 느낌으로 잘 말 하고, 약간 뻔할 수 있는 대답에 조금의 변주를 주고 했던 게 합격의 요인이 아니었나 싶음. 수학문제도 한 문제는 덜 풀었지만 나머지 문제의 사고 과정에서 틀린 점들은 없었던 것 같고.

끝으로, 갓-겜 사이퍼즈를 시간 날 때마다 하는 착한 어린이가 되자!!


그렇다. 사실 이 글은 사이퍼즈를 홍보하기 위한 글이었는데, 요즘에 내가 하기 시작한 똥망겜이다. 유저 수가 적어 외로우니 심심한 사람은 히오스 할 시간에 사이퍼즈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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